출발부터 삐걱 '존엄사법'… "연명의료 되레 조장"

입력 2018-02-11 19:31   수정 2018-02-12 05:31

서울대병원 등 의료계
병원 전자기록과 연동 안돼
"연명의료시스템 등록 중단"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받느라 임종 놓친 보호자도 생겨



[ 이지현 기자 ]
지난 4일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후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가족 전원의 동의를 받지 못해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혈압을 높이는 승압제를 투여하고 기관삽관을 하는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늘었다. 의료계서는 윤리 영역을 법으로 규제하다 보니 옥상옥이 됐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이대로는 못 하겠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8일 긴급회의를 열고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운영하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신규 등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스템으로 임종기 환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연명의료는 죽음이 임박해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줄이고 죽음에 대한 환자 스스로의 결정권을 높이기 위해 연명의료결정법을 도입했다. 법 시행에 따라 건강할 때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말기암 등에 걸려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 등은 연명의료시스템에 등록된다. 임종기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은 이 시스템에 접속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의료계서는 연명의료시스템이 오히려 연명의료 결정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급박한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병원 내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해 환자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 여부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연명의료시스템과 EMR은 연동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응급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연명의료시스템에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의료 현장 모르는 탁상 공론”

시스템 접속이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병원 공인인증서, 의사 공인인증서로 접속한 뒤 환자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입력해야 한다. 심장이 멎는 등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두고 사이트 접속에만 20~30분 넘는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꼴이다. 분초를 다투는 환자 치료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환자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하루빨리 연명의료시스템 중앙망과 병원 내부 EMR을 연동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진이 연명의료 시스템을 확인하지 않고 응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해도 문제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통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면 CPR을 한 의료진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때문에 신규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지 않겠다는 의료기관까지 나오고 있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서울대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들도 연명의료시스템 등록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의료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했다.

◆“인프라 없이 무리하게 추진”

임종 환자에게 요구하는 서류가 복잡하고 시행기관이 적다 보니 각종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윤리위원회가 있는 병원에서만 작성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윤리위원회가 없는 요양병원 등은 말기암 환자에게 대형 병원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 가족이 법에 따라 가족관계증명서를 갖추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의료진이 의식 없는 환자 가족에게 “연명의료를 멈추려면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벌어진다. 허 교수는 “대만, 프랑스 등에서는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해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연명의료 결정사항을 바로 알 수 있다”며 “아무런 인프라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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